Automatism
카페에서 (2010.05.03.)
Liddell
2010. 11. 18. 10:25
-생각했었지, 그런거.
밖이 훤히 보이는 창가 자리에서 그녀는 주문한 아메리카노를 한모금 삼켰다.
-미워하면, 미워하면 좀 더 쉽게 지울 수 있지 않을까.
달칵, 커피잔은 내려놓으며 그녀가 낮게 읊조렸다. 나는 눈을 들어 그녀를 한 번 올려다볼 뿐,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까만 눈동자는 눈 앞의 것이 아닌, 시선 너머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을 좇고 있었다.
-그런데 말야, 그렇게 생각해도 말야, 그 사람을 미워할 수도, 지울 수도 없었어.
아무 감흥도 실리지 않은 무미건조한 그녀의 목소리가 쨍한 햇살 마냥 테이블 위를 맴돌았다. 쨍하니 높은 그녀의 목소리.
-좋은 사람이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서,
아메리카노가 가득 담긴 잔을 티스푼으로 휘휘 저으며 그녀가 웃었다. 피식, 이랄까. 만약 미소에도 소리가 있다면, 그녀의 미소는 나무문에 달린 풍경처럼 밝은 소리를 낼 것이다. 너무나 맑고 경쾌해서 금새 사그라드는 소리.
-차라리, 아예 나쁜 놈이면 좋을 텐데.
달칵, 티스푼을 내려놓는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눈부시다. 따스하다 못해 따갑기까지 한 햇살이 그녀를 감싼다. 빛 사이로 그녀가 일순 사라지는 기분이 들어 눈을 부비고 그녀를 다시 찾아본다.
-이상하지, 분명그 헤어짐의 순간에는 악당이었을텐데.
그녀가 긴 생머리를 매만지며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고 웃었다. 똑똑. 그녀의 목소리마냥 쨍하니 맑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듯해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 창 밖을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