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님> by 야마다 에이미
"히메코, 모처럼 둘이서 보내는 밤이니까 뭔가 재미있는 걸 하자."
"네?"
"너도 애완용 고양이가 아닌 다음에야 축 쳐져 있지만 말고 좀 더 건설적으로 살아야지."
성가시게 하는 군, 하고 생각하면서 나는 일어섰다.
"있잖아, 내가 먹여 살려주니까 이 파파를 좀 즐겁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그럼 하모니카를 불게요."
"하모니카?"
나는 마슈한테 받은 하모니카를 주머니에서 꺼내서 불기 시작했다. 물론 부는 법을 알 리가 없으니까 엉터리로 부는 거다. 마슈가 없을 때 몇 번이나 연습했지만 결국 성과가 없었다. 그가 기타를 치듯이 멋지게 불어보고 싶은 욕심은 있었지만. 다시 한번 불어달라는 말이 나오게끔 불고 싶었다. 플리즈!
"자, 히메코. 하모니카는 이제 그만 두고..."
끝없이 이어지는 지리멸렬한 곡에 두려움을 느꼈는지 남자는 조심스럽게 나를 만류했다. 나는 멈추려 하지 않았다. 그저 하염없이 불어댔다. 지그시 참던 마슈의 그 표정. 나를 위해서만 완성되는 크로스워드 퍼즐. 빈칸을 전부 채운 단어들이 오르가슴의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마슈와 함께 경험한 모든 것들이 제멋대로 하모니카 소리가 되어 울리고 있다. 어쩌면, 하고 나는 황홀해진 상태에서 머릿속으로 생각한다. 그가 나에게 퍼즐과 같은 존재라면 나도 그런 건 아닐까? 그러나 그에게 완성 시킬 기회를 주지 않고 도망쳐 버렸다. 나는 미완성의 퍼즐. 그런 자신을 용서할 수 있겠어? 난 공주인데.
"저기 말이야, 히메코. 하모니카 잘 부는 건 알았으니까."
거짓말 하지 마. 이 정도로 서툴게 부는 사람은 유치원생 중에도 없을 걸. 누구든 귀를 막을 것이다. 하지만 서툴러도 상관없다. 단 한 사람, 귀를 막지 않을 사람을 나는 알고 있으니까. 단 하나, 이 선율에 푹 빠져줄 귀를 알고 있으니까. 그곳에는 달보다도 더 정확한 이정표가 외로이 반짝이고 있다.
아무리 해도 능숙해지지 않는 하모니카. 그리고 아무리 해도 능숙해지지 않는 사랑 받는 일. 하지만 그것들은 확실하게 그의 마음을 무너뜨린다. 무너져내려 이번에야말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나를 붙잡고 꽉 껴안는다. 포로가 되기 위해 가려면 지금이 적당한 때가 아닐까? 도망쳐도 아무리 도망쳐도 소용없다는 걸 이미 깨달았다. 우리는 같은 음색을 내고 있다. 그 사실을 아직 전하지 않았다. 인어공주의 심정을 이젠 헤아릴 수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동화의 주인공이 아니다. 만나서 껴안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그리고 증명하고 싶다. 먹을 것보다도 베개보다도 때로는 중요한 그 어떤 것을. 거기에는 로맨스도 존경도 없다. 아마도 서로를 음미하는 소리만이 언제까지고 울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온몸의 힘을 쥐어짜듯이 해서 단숨에 음계의 끝에서 끝까지 불었다. 그리고 혈관이 파열될 듯한 상태에 이르기 직전에 딱 멈췄다. 남자는 양쪽 귀를 막으며 엉덩방이를 찧었다. 단말마의 비명을 지를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머리를 숙였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파파."
그런 말을 남기고 짐을 양손에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에게서 타낸 돈으로 택시를 탈까 했지만 관뒀다. 역시 중앙선이다. 성지니까. 그 대신 그 돈을 히로오에 있는 바에 가서 호기롭게 써버렸다. 기다리게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기뻐서, 라고 말하던 마슈의 기분을 처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중략)
나는 하행선 플랫폼의 가장자리를 걷고 있었다. 이제 곧 린린장의 계단을 올라가는 자신을 상상했다. 그리고 문을 열었을 때 마슈의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아마도 감격한 나머지 눈동자가 촉촉해지겠지. 울지 말라고 한 마디 해주어야지. '내 보물 상자 안에 사는/비밀의 보석' 나도 모르게 노래가 나왔다. 기분이 좋군, 발밑의 노란 선이 어디까지고 이어질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바로 나만이 종착지를 알고 있다. '브릴리언트한 옆모습.' 정말 형편없는 노래다. 나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러자 그 바람에 다리가 꼬여 자신이 플랫폼 가장자리를 헛디뎠다는 걸 알았다. 몸이 붕 뜬 순간 하행선 열차가 플랫폼으로 들어 오는 게 보였다. 라이트가 달님 같군. 이게 현실일까? 마슈의 이름을 부를 틈도 없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 이외의 사람을 위해서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야마다 에이미의 <공주님>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