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matism
길을 걷다 (2010.05.05)
Liddell
2010. 11. 18. 10:28
-다녀오겠습니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집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뒤로 하고 집을 나선다. 볼에 닿는 공기는 차지 않지만 후덥지근하지도 않다.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나를, 생각을 보호해줄 MP3가 이어폰을 통해 들려온다. 그렇게 한참을, 그냥 길 위를 걸었다.
이 느낌, 오랜만이다.
마음의 평온함, 오로지 하늘과 바람, 그리고 음악과 나만이 존재하는 이 어스름한 순간.
나는 이렇게 살아왔고, 이렇게 나의 존재가 아직은 이 땅에, 이 지구에 발을 붙이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혼자인게 좋지만, 혼자인게 두렵다. 나라는 이 존재의 중량을 한 순간에 오롯하게 나만이 느낄 수 밖에 없는 혼자인 이 시간이 무섭고도 좋다.
길 위에서,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세상의 끝을, 그 가장자리 선을 훌쩍 뛰어넘어,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릴 수도 있을 것만 같다. 그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계속 걸어, 구름과 바람이 시작되는 세상의 시작점까지 갈 수도 있을 것만 같다.
핸드폰을 들었다놓았다, 폴더를 열었다닫았다를 반복한다. 뭔가 외치고 싶은데, 누구에게 무엇을 외쳐야만 하는 지 모르겠다. 결국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 지, 답을 알지못하는 채 그저 바람만 맞이한다. 그래도 괜찮다. 바람이 나를 어루만진다. 티끌같은 인간을 위로한다.
길을 걷는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 그냥, 나 자신의 하찮음을 느끼며 걷는다. 그냥, 자연의 아름다움에, 자연의 관대함에 몸을 바르르 떨며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