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ce in Wonderland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by 와타야 리사 본문

Bookworm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by 와타야 리사

Liddell 2010. 11. 24. 11:42


이런 것을 보여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훔쳐간 사람에게 화낼 줄도 모른다. 팬시 상자까지 기어가 코를 훌쩍이며 누더기 사진을 조심스럽게 스크랩북에 끼우는 그를 보자 소름이 돋았다. 나따윈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넋을 잃고 사진을 들여다보며, 그는 이쪽 세계에서 이미 모습을 감추고 있다. 이런 걸 반복하다 보면 언젠간 아예 이쪽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는 게 아닐가? 나도 모르게 그의 팔을 붙잡았다.

"니나가와, 올리쨩 얘기 말고 다른 얘기하자."
"응? 예를 들면 어떤?"
"뭐가 있을까. 뭐든, 아무거나 상관없으니까."

(중략)

"아야ㅡ"
복숭아를 먹던 니나가와가 얼굴을 찡그렸다.

"왜 그래?"
"복숭아 즙이 입술에 스며 들었어. 말라붙은 입술 껍질을 전부 뜯어냈거든."
코가 막혀 입으로 숨을 쉬고 있는 탓인지 니나가와의 입술은 잔뜩 갈라져 있었다. 틀림없이 스며들겠네. 입술에 엄지손가락을 대로 눈썹을 찌푸리는 그를 보고 있으려니 저절로 입에서 말이 넘쳐 나왔다.
"정말? 잘됐다! 나도 만져볼래! 핥아볼래!"
내 몸은 저절로 움직여 반쯤 벌어진 그의 입술을 날름 핥아버렸다.
피 맛이 난다.
니나가와가 삭하고 얼굴을 뒤로 뺐다.
"아퍼! 지금 뭐 하는 거야?"
의아한 표정으로 니나가와는 엄지 손가락으로 입술을 훔친다. 한술 더 떠 파자마 옷깃으로도 닦아내고 있다. 그 동작을 보고 있는 동안 내가 저지른 일의 심각성이 서서히 와 닿았다. 얼굴이 굳어지고, 전신의 피가 쫘악 빠져나간다. 아무런 변명도 떠오르지 않는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진 전혀 모르겠지만, 가끔 날 보는 눈초리가 이상해져. 지금도 그랬지만."
"뭐?"
"나를 경멸하는 눈이 된다구. 내가 올리짱의 라디오를 듣고 있었을 때나 체육관에서 옆에 앉아 신발을 신었을 때, 살짝 스치는 것조차 끔찍하다는 듯한 차가운 경멸의 눈초리로 이쪽을 보고 있었어."

아니야, 그건 경멸이 아니야.
더욱더 뜨거운 어떤 덩어리가 가슴을 가득 메워와 숨이 막혀서, 그런 눈이 되는 거야. 아니 그보다 니나가와, 내 눈이 어쩌니 저쩌니, 그럼 지금까지를 나를 보고 있었다는 거야? 넌 내 너머의 올리쨩밖에 보고 있지 않다가고 생각했는데.

-와타야 리사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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