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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in Wonderland
<작별인사> by 신경숙 본문
장흥은 고립되어 있다.
차를 돌릴 수 밖에 없겠다.
건물 옥상에 주민들이 대피해 있고 헬기가 떠서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장흥행을 감행했다간 자칫 A도 L도 고립되겠다. 얼마 안 있으면 A와 L이 멈춰 서 있는 도로가 유실되고 전화선이 끊기고 송추 쪽에서 토사가 섞인 물이 밀려오겠다. 논도 밭도 닭도 오리도 덤프 트럭도 떠내려가겠다. 오갈 데 없는 쥐 떼가 나뭇가지를 타오르겠다. 달의 영향으로 먼 바다의 물도 역류하겠다. 거대한 물마루가 이동하여 바닷가의 저지대를 덮치겠다. 사랑하는 A, L. 너희는 서둘러 돌아가야겠다. 여기까지 바래다줘서 고맙다. 나는 A가 쥐고 있는 운전대를 잡고 차를 재빨리 후진시켰다. 어어, 느닷없는 자동차의 후진에 A의 눈이 휘둥그래지고 L의 손바닥에서 흰 복숭아가 차 바닥으로 떨어져 데굴데굴 굴렀다. 차 바퀴가 흙탕물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나는 재빨리 A와 L의 뺨에 입 맞추고 진입 금지 건너편 황토물에 쓸리었다.
칠레에서의 마지막 무렵은 밤마다 꿈이었다. 꿈마다 손목이 떨어져나가거나 발이 잘렸다. 떨어진 손목과 발을 T가 붙여주었고 코가 베어지면 A가 달아주었다. 어느 꿈엔 뽑힌 눈을 기선생이 다시 박아주기도 했다. 길에서 귀가 떨어져 바닥에 굴렀을 땐 J가 찾아주었다. 그러고도 얼굴이 통째로 쑥, 달아나는 꿈도 있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홍을 죽이려 했던 대가였다. 사랑, 이렇게 희미해질 수도 있는 것을. 밤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꿈에서 깨어 손과 발이 코와 입이 무사한 것을 확인했는데도 눈만 감으면 저만큼 혼자 떨어져서 나뒹구는 손을 봐야했다. 발을, 눈과 귀를. 너희 생각을 해야 다시 잠이 들 수 있었다. 너희 곁이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돌아왔는데.
사랑하는 A, 그리고 L. 나를 기억해줘. 고분 속에서 토용을 출토할 때, 새 드라마에 출연할 때, 그런 때에. 나는 실종처리될 거야. 발견되기에는 너무 멀리 떠내려 왔어. 발견 된다 해도 너무 다쳐서 나를 못 알아볼거야. 내가 빠져나온 상처투성이 내 몸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나도 모르겠어. 나는 사라지지만 너희는 나를 기억해줘. 그 말을 하려왔지. 살아서 행복한 날이면 한 번만 나를 생각해줘. 봄바람이 살랑일 때, 과일에 단물이 들 때, 단풍이 질 때, 첫 눈이 내릴 때에 한 번만. M이라는 여자가 있었다고...... 함께 꽃게를 파먹었고, 옷을 바꿔 입었고, 기타의 G음을 배웠고, 세 시간짜리 산책을 했고,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고. 심야에 긴 전화 통화도 했었다고. 가끔 맥주를 마시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었다고...... M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눈을 감았다.
지척에서 나를 데려가려는 자의 기척이 느껴진다.
-신경숙씨, <작별인사>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