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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in Wonderland
(2011.05.16.) 본문
ㅡ 뭐라고요?
시끄럽다. 야외공연장에 울리는 앰프소리는 귀를 멍하게 만들었고, 길게 이어지는 베이스 사운드가 잦아들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울리는 비명소리로 반고리관이 아파왔다.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내 앞에는 필사적인 표정의 한 사람이 서 있었다.
ㅡ 대체 뭐라고 하시는 거에요?
짜증이 솟구쳐 나는 최대한 정중하지만 가시돋힌 목소리로 되물었다. 의사전달능력이 없는 사람은 질색이다.
ㅡ ... 한다고, 널 좋아한다고!
아............., 난 또, 뭐라고. 커다란 음향에 묻혀 여전히 잘 들리지는 않지만, 핏대를 잔뜩 세운 채 고래 고래 소리를 질러대니 전달이 되긴 되는군.
ㅡ 그런데요?
심드렁하게 받아치고는 다시 무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상대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와 무대를 번갈아 보더니, 급기야 체념한 표정으로 함께 무대를 바라보았다.
ㅡ 안 갈거에요?
공연도 모두 끝나고 사람들도 하나 둘씩 빠져나가 묘한 고요함이 공연장을 뒤덮고 있는데, 상대는 멍하니 무대만 바라보고 있다. 벌써 10분 째. 본디 참을성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데다가, 겨우 이 사람때문에 인내심이라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성품을 발휘하고 싶진 않다.
ㅡ 그럼 거기 계속 계시던가요. 전 갈겁니다. 안녕히!
2초만에 후다닥 내 할 말만 해버리고는 미련없이 돌아선다. 그때, 따뜻한 손이 팔목을 감싸왔다.
ㅡ 잠깐만!
앞을 향하던 발걸음이 멈칫했다. 아, 하마터면 넘어질 뻔 했다. 이 사람, 왜 이래? 불쾌한 기분을 최대한 표정에 가득 담고 고개를 돌렸다.
ㅡ 뭐에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바들 바들 떠는 그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나 참, 어쩌라는 건지.
ㅡ ... 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니?
한숨이 비어져나왔다.
ㅡ 죄송합니다. 전 그런 쪽엔 관심 없고요, 더더군다나 애인 있는 사람한테는 관심, 전.혀. 없습니다.
전.혀. 혀 끝에 톡톡 울리는 감이 좋다. 잔인한 기분이 든다. 언젠가 우연히 팔목에 올라 앉은 개미를 보았을 때 느꼈던 오소소한 소름과 그 개미를 꾹 눌러 죽일 때 맛보았던 환희가 동시에 쓰나미처럼 몰려들었다. 남자의 하얗게 질린 얼굴이 꺼멓게 죽어간다.
ㅡ 나에게 이젠 남은 게 없어..
팔목을 잡고 있던 손에서 힘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옷에 묻은 오물을 털어내듯 집게 손가락을 들어 그 사람의 손을 살짝 들어내버린다. 이따 수돗가에서 손 씻어야겠다. 머리 속에는 온통 그 생각뿐이다.
ㅡ 그건 제가 알 바 아니네요.
상큼하게 한 번 웃어주고는 발걸음을 돌린다. 아, 오늘 공연본 피로가 싹 다 풀리는 기분이다. 상쾌한 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