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ce in Wonderland

배수아 <붉은 손 클럽> 본문

Bookworm

배수아 <붉은 손 클럽>

Liddell 2020. 5. 31. 14:08

  나는 무열 너가 나에게 그런 말할 권리는 없다,

내가 설사 가스사고로 내일 아침 죽는다고 해도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대꾸했다. 그건 정말이었기 때문에 무열은 할 말이 없었다. 말문이 막히자 무열은 화가 났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덧붙였다. 오입하러 들어온 여자의 집에서 싱싱한 샐러드를 바라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나는 그날 무열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무열은 마시고 있던 생수병을 집어던지고 다시는 오지 않겠다면서 집을 나섰다. 나는 마음이 조금 아팠던가? 나는 길을 걷다가 다른 사람의 몸에 부딪혀 불쾌해하는 상대편의 표정을 만나게 되면 며칠동안 마음이 무겁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두운 기억을 주고 싶지 않다. 상처는 더욱 그렇다. 나 때문에 낯선 사람이 잠시 동안 불행했던 것에 대해서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다.

그렇다. 그래서 무열이 떠나고 난 다음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중략)
 
   나는 용기가 필요했다. 지금까지 남자들과 만나고 같이 지내고 헤어지는 내내 나는 건조하고 삭막한 성격이었다.

왜 너는 먼저 전화하지 않지? 하고 처음으로 동거했던 남자가 물었었다. 왜 너는 잠자리에서 콧소리를 내지 않지? 왜 너는 불빛이 없는 곳에서만 옷을 벗으려고 하지? 왜 너는 아주 조그만 미소도 그렇게 인색하지? 왜 너는 (여자인데도 불구하고) 눈물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지?
왜 너는 그렇게 건조해서 일년의 반을 정전기에 시달리지?

그렇게 피곤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서 왜 너는 나이트클럽 같은 곳에서 주운 남자와 쉽게 자는 거지? 왜 너는 그렇게 미신을 많이 믿는 거지?
그리고 왜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니, 왜?

 

 
난 그걸 몰라.


 
   첫번째로 동거했던 남자에게 해주었어야 할 대답이다. 나는 내가 여자로서 어떤 정도의 존재이다 하는 느낌을 그를 통해서 알았다. 내가 사실은 강렬하게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사소한 마음으로 더 쉽게 할 수 있었던 남자들과의 성관계 (여자와 자본 일은 아직 없다)나 너무 긴 동거 생활이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있다는 어지러움 같은 것.
 
(중략)
 
"나가자. 나가서 얘기해."
"그 여자랑 헤어져. 이제 끝내라구."
여자는 남자를 따라가면서 계속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 당신에 대해서 아버지에게 말할거야."
"그러지 않기로 했잖아. 뭐야, 비열하게."
"비열한 건 당신이야. 날 이용했어. 그래서 중국에 특파된 거 잖아."
남자가 뺨이라도 때릴 듯이 여자를 노려보았다. 뭔지 모르는 남자의 불가침 영역을 여자가 건드린 것 같았다.
"그래도 나 당신 안 놓쳐. 달아날 수 있을 것 같아? 나 중국에 있는 그 여자에게도 말할거야. 우릴 방해하지 말라고."
"이 나쁜 년."
남자가 여자의 손목을 잡았다. 남자가 여자를 때릴 거라고 생각했다. 나뿐만 아니고 무열도 코 밑을 긁고 있던 요리사도 그리고 요릿집 안의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남자는 그러지 않았다. 남자는 여자의 손목을 잡고 기름이 끓고 있는 튀김 솥 안으로 집어 넣었다.
 
"당신은 나를 절대로 떠날 수 없을 거야아아아아아아아아악!"
 
   무서운 광경이었다. 여자의 얼굴이 불붙고 숯덩이처럼 검붉게 변하더니 눈알이 튀어나올 듯이 커지고 고통과 쇼크 때문에 기절했다. 튀김 솥에서 꺼낸 여자의 손은 껍질이 벗겨낸 짐승처럼 피부가 터지고 짓물러 있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종업원 중의 한 명이 재빠르게 119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뭐하는 거요? 튀김 기름을 망쳤잖아. 변상해 줘야겠어."
요리사가 사색이 되었다. 무열이 젓가락을 테이블에 집어던지듯이 내려놓았다.
"여기서 나가자."
요릿집을 나가면서 나는 보았다.
피부가 터지고 짓무른 여자의 손. 끔찍하게 부풀어올라 반쯤 익어버린 채 파괴된 조직 사이로 피가 벌겋게 배어나오는 살. 상상할 수 없는 사랑의 고통. 붉은 손이다.


 
 
-배수아씨, <붉은 손 클럽>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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