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ce in Wonderland

배수아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 본문

Bookworm

배수아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

Liddell 2020. 5. 31. 14:15

난.
거리공연가가 편지에서 김씨의 부인을 불렀다. 몇번이나 불렀다. 그는 김씨의 부인의 이름에서 마지막 음절을 간략하게 만드는 그 한 음절을 좋아했다. 그는 아무도 김씨의 부인을 부르지 않은 그런 방식으로 그녀를 불렀다. 그는 누구와도 구별되는 깊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검은 망또를 두른 마법사이기도 했다. 그의 목소리는 자신이 말하는 대사를 살아 있는 비둘기로 만들어 하늘로 날려보낼 수 있있다. 가방에서 꺼낸 나무오리를 울게 할 수 있었다. 그 오리가 주둥이를 이용해 검은 표지의 책에서 운명의 페이지를 펼치도록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가 그 페이지에 적힌 문장을 읽으면, 그것은 시가 되었다. 관객들의 자신도 모르게 사로잡혀 가슴 떨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청년처럼 우아하게 마른 아름다운 몸과 은빛의 아름다운 머리칼을 가졌다. 비록 주름졌으나 여전히 아름다운 미소를 피워내는 얼굴도. 삐에로의 코를 달고 기다란 장대 위에 올라서서 우스꽝스러운 광대연기를 할 때조차도 그는 아름다운 배우였다. 그것은 그의 몸짓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설사 그가 연기하던 방의 불이 꺼져 실제로는 무대 위에서 그의 모습을 전혀 볼 수 없게 된다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른 때가 아닌 바로 그 순간에 '아름답게 보인다'는 사실을 의심할 관객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것도 더욱 변함없는 방식으로 아름답게. 그는 놀랍게도 암사슴처럼 젊은 김씨의 부인이 늘 꿈꾸어오던, 오직 불분명한 갈망들로 이루어진 분명한 존재였다. 김씨의 부인은 그것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이끌렸다. 사랑에 빠졌다. 짧고 눈부신 기적의 순간이었다.
 
배수아씨,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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