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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와 사랑> by 헤르만 헤세

Liddell 2010. 11. 24. 11:47


나르치스는 그에게 얼마나 고귀한 황금새가 날아들어 왔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 고귀한 품성 때문에 오히려 고독한 나르치스는 여러 가지 면에서 그들 두 사람 사이에는 서로 상충되는 점이 많은 것 같지만 곧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다. 나르치스는 음울하고 마른 편이었으나 골드문트는 꽃처럼 눈부셨다. 나르치스가 명상가요 분석가라고 한다면 골드문트는 몽상가며 동심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 상반되는 사람들 사이를 연결해 주는 공통점이라면 두 사람이 다 같이 고귀한 성품을 지닌 인간이라는 것, 눈에 띄게 두드러진 재능과 특징이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점, 그리고 두 사람이 모두 특이한 운명적 사명을 지니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점이었다.

(중략)

-천만에 말씀을. 곧 가능할걸세. 들어보게. 사색가는 논리를 통해 세계의 본질을 이해하고 표현하려고 노력한다네. 사색가가 우리들의 이성과 그 이성의 도구인 논리학이 불완전한 기계라는 사실을 알고 있듯 마찬가지로 현명한 예술가라면 그의 화필이나 끌이 천사나 성인의 그 빛나는 본질을 형상화하기에는 너무나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럼에도 예술가나 사색가는 각기 그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시도를 하는 걸세. 그들로서는 그렇게 하는 길 이외에는 어쩔 도리가 없으니 말일세. 인간은 자연으로 받은 천분을 갖고 자신을 구체화하려 할 때는 그가 할 수 있는 지고의 것과 가장 의미깊은 일을 하는 때문이지. 그래서는 나는 그 전에 자네에게 가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지. 사색가나 금욕주의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말고 자네 자신이 되어 자신을 실현하는데 애쓰라고 말일세.
-대강 짐작은 가는 것 같네. 그런데 자신을 구체화한다는 말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철학적인 개념이므로 달리 표현할 수는 없어. 우리들 아리스토텔레스와 성 토마스 학파의 제자들에게는 모든 개념의 지고는 완전한 존재일세. 완전한 존재는 신(神)이네. 존재하는 그 외 일체의 것은 그 반 정도만의 존재며 부분적인 존재여서 생성되어 가는 과정에 있고 여러가지 가능성으로 혼합된 존재일세. 그러나 신은 혼합된 존재가 아닌 단 하나의 존재며 가능성의 존재가 아니라 현실, 바로 그 자체이네. 그러나 우리들은 덧없는 존재며 생성되어 가는 존재며 가능성을 갖고 있는 존재이네. 우리들에게는 완전성도, 완전한 졵재도 있을 수가 없어. 우리들이 힘에서 행위로, 가능성에서 실현을 향해 나아갈 때 우리들은 진실한 존재에 참여하며 완전성과 신성에 조금이라도 접근할 수 있는 것이네. 그게 말하자면 자신을 구체화하는 것일세. 자네는 그 과정을 자네의 체험으로 인식해야만 하네. 자네는 예술가로 많은 작품을 만들었네. 그런 상이 진실로 성공된 작품이며 한 인간의 상이 우연에서 해방되어 순수한 형태로써 완성되었다면 자네는 예술가로서 인간의 상을 구체화한 셈이 되네.

(중략)

어떻든 나르치스는 골드문트로 인해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고귀한 인간으로 정해진 사람은 정열적이고 도취적인 생활 속에 깊이 파묻혀 먼지와 피로 더렵혀진다고 하더라도 비굴해서는 안되며 자신의 내부에 깃들인 신성을 죽이지 않으며 아무리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헤맨다고 하더라도 영혼의 그 밑바닥에서 신성한 빛과 창조력은 꺼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었다. 나르치스는 친구의 그 혼란된 삶을 깊이 들여다보았지만 친구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아니, 그 뿐이 아니다. 골드문트의 얼룩진 손에서 내적인 형식과 질서에 의해서 이상하리만치 조용히 살아가는 목상이 이루어져가는 그 과정을 본 이래, 그는 그 예술가와 유혹자의 가슴에는 빛과 신의 은총으로 충만하다는 것을 알았다.
대화를 통해서 그의 규율과 사상의 질서를 내세워 그의 정열에 대립시킴으로서 친구에 대해 우월감을 갖는 것은 용이한 일었다. 그러나 골드문트가 제작한 목상의 그 조그마한 자태 하나하나가, 그 눈과 그 입이, 곱슬곱슬한 수염이나 옷주름이 어쩌면 사색가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며 생생하고 무엇으로 대치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마음에는 저항과 혼돈뿐인 그 예술가가 오늘과 장래에 올 무수한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고난과 노력의 상징적인 영상을 높이 쳐들지 않았던가? 무수한 사람들의 마음의 불안과 동경, 기도와 존경의 마음, 그리고 위안과 보증과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영상을 형상화 하지 않았던가?

(중략)

-죽음에 대해 아무런 반감도 떠오르지 않을 뿐더러 죽음이 그리 나쁘게 생각되지도 않는 거였네. 나는 그 이후로 때때로 심한 아픔을 느꼈는데, 그건 꿈이라고 할는지, 얼굴이라 할는지 모를 그런 것이었네. 자네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도록 하게나. 나는 거기에 누워 가슴이 저리는 고통을 느껴야만 했네. 그래서 저항을 하며 비명을 질렀으나 어디서 웃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네. 그건 아련한 유년 시절의 기억에 남아있는 음성, 바로 어머니의 음성이었어. 쾌락과 사랑으로 가득한 여자의 깊은 음성이었다네. 그때 나는 그것이 어머니라는 것을 알았고 어머니가 곁에 있어서 나를 안아 나의 가슴을 열고 손가락으로 늑골 사이를 찔러 심장을 꺼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네. 그걸 알았을 때 이미 고통은 나를 떠나버렸네. 지금도 그 고통이 다시 엄습하지만 그건 고통도 아니며 적도 아닌 나의 심장을 드러내는 어머니의 손가락일 뿐이네. 어머니는 지금 그 일로 바쁘다네. 어머니는 때때로 몸을 숙이며 쾌락의 신음소리를 내기도 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웃으며 소곤거리기도 하지. 어떤 때는 나와는 멀리 떨어져 하늘에 있어서 구름 사이로 그 얼굴이 보이기도 한다네. 구름처럼 크게 말이세. 어머니가 거기서 슬픈 미소를 지으며 빙빙 떠도는데, 그 미소가 나를 빨아 당기고 나의 심장을 들어내는 걸세.

-헤르만 헤세 <지와 사랑>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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