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ce in Wonderland

에피쿠로스 <쾌락> 본문

Wonderland/Writings

에피쿠로스 <쾌락>

Liddell 2011. 4. 25. 19:06

욕망과 쾌락

 

인간에게는 몇 가지의 욕망들이 epithymia 존재하는데 크게 세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그 첫 번째는 자연적인 physikai 동시에 필연적인 anangchaiai 욕망으로, 갈증이 날 때 물을 마시고 싶어 하는 것과 같은, 고통을 제거하려는 욕망이다. 두 번째는 사치재를 다루는 등의 자연적이지만 필연적이지 않은 욕망이며, 마지막은 결코 자연적이지도 필연적이지도 않은 욕망으로 흔히 헛된 욕망이라 불리는 것들이 있다. 이러한 욕망들을 잘 살펴 몸의 건강과 aponia 마음의 평안을 ataraxia 도모해야 한다. 이 상태가 바로 행복한 삶의 조건으로, 인간은 항상 이 상태를 추구한다. 마음의 평안을 방해하는 고통을 안고 있다면 인간은 고통과는 결코 공존할 수 없는 쾌락을 추구함으로써 그 고통을 제거하려고 하며,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된다면 더 이상 쾌락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행복한 인생을 요약하자면 쾌락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평안을 이끌어내는 중요 개념이 쾌락이기 때문에 쾌락은 으뜸가는 선이자 모든 선택의 근간이 된다. 이 쾌락의 추구에 있어 인간은 결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결핍으로 인한 고통의 제거가 목적이기 때문에 매우 소박한 식사도 배고픔이라는 고통을 제거하는 데 있어 사치스런 음식과 같은 역할을 하므로 소박한 식사만으로도 인간은 충분히 쾌락을 느낄 수 있다. 이렇듯 에피쿠로스가 이야기하는 쾌락이란 결코 퀴레네 학파의 쾌락처럼 방탕하거나 육체적이고 순간적인 쾌락이 아니라 몸의 고통이나 마음의 혼란으로부터의 자유라고 말할 수 있겠다.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천체 현상이나 죽음에 대한 지식 또한 필요한데, 그 이유는 우리가 이러한 일들에 대해 인간과의 연관성에 대해 의심하고 두려워할 때 인간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신과 죽음에 관한 그릇된 믿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믿음과 일관된 방식으로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에 축복받았으며 불멸하는 신의 본성을 혼돈이나 분노와 같은 속성으로 표현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하지만 노고나 성냄, 혹은 호의와 같은 개념은 언제나 고요한 신의 성질과는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신적인 존엄성과는 양립 불가능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도 그릇된 믿음을 가지는데, 죽음은 결코 인간에게 어떠한 불쾌한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선과 악은 감각에 따른 것인데, 죽음이라는 것은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몸을 형성하는 원소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감각에 있어 아무런 권한을 지니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은 인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산 사람에게는 죽음이 아직 오지 않았고 죽은 사람에게는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과 그 연구 방식

 

쾌락이 윤리학에서의 옳고 그름을 결정짓는다면 자연학에서의 옳고 그름은 감각이 결정한다. 따라서 자연의 현상에 대해 밝힘에 있어 최우선시 되는 탐구 방식은 감각에 의존하는 것이며 확증이 필요한 것이나 prosmenon 불분명한 것이 adelon 있다면 전적으로 마음의 직접적 영상 포착 tas parousas epibolas dianoias, 또는 다른 어떤 판단 기준의 직접적 포착에 tas parousas epibolas hotou ton criterion 의존해야 하되, 우리 안에 존재하는 느낌들 pathe에 충실해야 한다.

수 많은 세계들로 이루어진 우주는 무한하며 그 끝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우주는 물체와 허공으로 구성되며, 물체는 다시 구성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이 구성 요소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으며 변형되지도 않는다. 그 수에 있어서는 무한하되 그 종류의 수는 무한하지는 않고 매우 다양하다. 이 구성 요소들은 원자로서, 출발점을 지니지 않은 운동을 지속한다. 비록 그 운동의 방향이나 정도가 매우 빠르고 힘있는 것으로부터 제자리 운동에 이르기까지 양상이 매우 다양하나 이는 물체나 인간들에게 지각되는 외부 영상을 yupoi 형성하는데 꼭 필요하다. 외부 영상이란 데모크리토스가 이야기한 바처럼 공기 중에 자국을 남겨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 대상으로부터 지속적으로 흘러나오는 매우 얇은 막으로 우리의 망막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양태로 청각과 후각 또한 지각이 가능해진다. 이 때 외부 대상에서부터 유실되는 원자는 허공에 존재하는 원자들로 대체되기 때문에 전체적인 물체는 지속된다.

우리가 감각이나 느낌을 판단 기준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영혼의 존재 때문인데, 영혼이란 미세한 입자들로 구성된 물체이며 soma, 몸 전체에 고루 퍼져 있고, 열기와 혼합된 바람과 매우 유사한 존재이다. 또한 이는 몸으로 보호되고 있으며 부분이 유실되더라도 감각 능력을 잃지 않는다. 이는 육체와 영혼에게 주어진 우연한 속성인데, 둘 중 어느 하나만 존재해서는 감각이 형성되지 않는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본질적 속성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본질적 속성과 우연적 속성은 그들 자체가 모여 물체 전체를 형성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단지 물체가 연속적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서 인간은 세상이 필연적으로 한 가지 모습으로 생성된 것이 아니며, 모든 종류의 모습으로 생성된 것도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천체 현상의 궁극적 본성이 여러 원인을 지니거나 신과 양립 불가능하다는 절대적 진리를 깨달을 때 인간은 행복에 도달 할 수 있다. 인간이 미처 깨닫지 못해 괴로움을 가지게 되는 함정의 첫 번째는 천체, 즉 자연 자체가 신과 같은 존재이며 자신의 의지를 지닌다고 믿는 것이고, 두 번째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그에 대한 분명한 개념이 바로 서 있지 않음이다. 하지만 이러한 괴로움들은 느낌과 감각에 따라 분명한 증거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모든 고통으로부터의 해방, 보편적이고 가장 중요한 원리들에 대해 계속 기억하는 단계, 마음의 평안에 ataraxia 이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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