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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뜻대로 하세요> 본문

Bookworm

셰익스피어 <뜻대로 하세요>

Liddell 2020. 5. 31. 14:14

제이퀴스

당신의 가장 큰 실수는 연애를 하고 있는 점이오.


 
(중략)
 
올렌도
그럼, 그분이 여자의 죄악이라고 비난한 결점들 중에 중요한 것을 좀 기억하고 있나요?


로잘린드
중요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어요. 죄다 반 푼짜리 동전처럼 똑같고 각각의 결점은 망측하게 보이나, 다음 결점이 또한 못지않게 망측하거든요.


올렌도
그중 몇 개를 좀 이야기해 줄 수 있나요?


로잘린드
싫어요, 괜히 환자 아닌 사람한테까지 내 치료법을 대주긴 싫어요... 글쎄 어떤 남자가 이 숲을 돌아다니면서 나무 껍질에다 '로잘린드'라는 이름을 새겨 가지고 어린 나무들을 망치고, 또는 산사나무에다 시를 걸어 놓고 가시 덤불에다 비가를 걸어 놓고 하는데, 정말 죄다 로잘린드의 이름을 찬미하는 노래들이에요. 그 연애쟁이를 만나면 좋은 처방을 좀 해 줄 생각입니다. 그분은 연애의 열병에 걸려 있는 모양이니까요.


올렌도
내가 바로 사랑의 열병에 걸린 그 사람이오. 제발 치료법을 알려주시오.


로잘린드
우리 아저씨가 말씀하신 증세를 당신한테선 전혀 볼 수 없는 걸요. 연애하는 남자를 알아보는 방법을 아저씨가 가르쳐 주셨어요. 그런데 당신은 확실히 사랑의 동심초 바구니 속에 포로가 될 사람 같지가 않은 걸요.


올렌도
그 증세란 건 어떤 겁니까?


로잘린드
볼이 여위는데, 당신은 안 그렇잖아요. 얘기도 싫어하는데, 당신은 안 그래요. 수염을 깍지 않는다는데, 당신은 안 그래요. 하지만 이 점은 용서해 드리겠어요. 당신 수염의 분량은 오직 막내 몫밖에 안 돼 놔서 그러는 것이니까요. 그 다음, 당신의 긴 양말은 매어 있지 않고 모자끈은 풀어지고 소매 단추는 끌러져 있고 구두끈도 풀어져 있고, 그래야 할 것 아녜요? 그런데 당신은 그런 남자가 아니잖아요. 아니 오히려 말쑥한 옷차림에다가, 남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 같다기보다는 당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같은 걸요.


올렌도
내가 연애하고 있다는 걸 그대가 믿어 줬으면 좋겠어요.


로잘린드
내가 그걸 다 믿어요? 차라리 당신이 사랑하는 그 여자보고 믿으란 것이 더 빠를 거예요! 그 점에 대해서는 내가 보증하지만, 그 여자는 입으로는 말 안 해도 실상은 쉽게 믿어 줄 거예요. 이런 점이 여자들이 줄곧 자기 양심을 속이고 있는 점이랄까요...


 
(중략)
 
실리아
그것 봐요, 성실치 않은 분이지 뭐예요.


로잘린드
넌 그렇게 생각하니?


실리아
음, 설마 소매치기나 말도둑 따위는 아니겠지만, 그러나 사랑의 진실성에 있어서는 그분은 뚜껑이 있는 빈 잔이나 벌레 먹은 호두처럼 속이 비어 있나 봐요.


로잘린드
사랑이 부실하단 말이냐?


실리아
음, 사랑을 하고 있을 때는요... 그렇지만 아마도 지금 그분은 사랑을 하고 있진 않아요.


로잘린드
너도 그분이 사랑을 하고 있다고 굳세게 맹세하는걸 들었으면서.


실리아
듣긴 들었지만 지금 들은 건 아니잖아요. 더구나 애인의 맹세란 건 술집 종업원의 말과 같아서, 어차피 틀린 계산서를 가지고 어거지 쓰는 격이지요. 그분은 이 숲속에서 언니의 아버지 공작님께 시중들고 있다나요.


로잘린드
나도 어제 공작님을 만나서 여러 가지 문답을 해 봤어. 공작님은 내 가문을 물으셨지. 나도 공작님께 지지 않는 가문이라고 대답했더니... 웃으면서 나를 보고 잘 가라고 하셨어... 하지만 가문 얘길 해서 뭘 한담? 올렌도 같은 남자분이 있는 이런 때에.


실리아
아, 근사한 남자분이기도 하시지, 그분은 근사하게 노래도 짓고, 입심도 근사하고, 근사한 맹세를 해 놓고는 근사하게 깨뜨리고... 애인의 가슴을 스쳐놓고ㅡ미숙한 기사처럼 한쪽 배때기에만 박차를 넣고, 점잖은 기러기 양반같이 창을 부러뜨리고 말이에요. 하지만 젊은이가 타고 바보가 안내하는 건 근사하단 말이죠...


 
(중략)
 
올렌도
로잘린드, 두 시간쯤 어디를 다녀올까 하는데요.


로잘린드
어머나 당신, 두 시간이나 헤어져 있을 순 없어요!


올렌도
난 공작님 식사에 가봐야 해요. 두 시간 후에 다시 돌아오겠어요.


로잘린드
예, 가시구려, 당신이 어떤 분인지 이제 알았어요. 그럴 거라고 친구들한테 이야기도 들었어요.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당신의 감언에 속았어요. 이제 하나의 여자가 버림받은 것 뿐이에요. 아, 죽고 싶어라... 두 시간이라고요?


올렌도
그래요, 로잘린드.


로잘린드
정말, 진정 신에 두고, 그리고 위험성 없는 온갖 그럴듯한 맹세에 두고, 만약 당신이 눈곱만큼이라도 약속을 어기거나 일 분만이라도 시간에 늦게 오면, 이렇게 생각할 테에요. 당신은 부실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대담한 파약자, 가장 허무 맹랑한 연인, 당신이 로잘린드라고 부르는 그 여자에게 가장 알맞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이에요. 그러니 저의 비난을 명심하시고, 약속을 지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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