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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in Wonder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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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in Wonderland

liddell.tistory.com/m

"자, 여기에서는 보다시피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으려면 계속 달릴 수 밖에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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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한낱 글쟁이의 도피처일뿐 입니다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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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딥한 빡침(2021.04.30) 머리가 지끈 지끈 아파왔다. 가까운 관계라는 건 왜 그렇게 쉽게 망그러지는 건지. 손을 뻗어 인형을 끌어와 꼭 그러안았다.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운, 내가 아무말도 안 건네도 되고, 나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나의 작은 인형. 문득 그가 내게 바라는 게 그런 존재란 생각이 들었다. 본인이 원할 때 그 자리에 있고 본인 맘에 드는 것만 해야하는, 아주 작은 위로 같은 것. 하지만, 나도 살아숨쉬는 인간인걸. 내게도 나의 생각이 있고 하고픈 말이 있다. 나의 삶의 방식이라는 걸, 그는 전혀 존중해주지 않는다. 그가 원하는 건 오로지 잘 예속된 인형일 뿐이지.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사람들은 내가 심각한 순간에도 웃음끼 섞인 말을 한다고 하는데, 실제로 나는 그 순간이 웃겨죽겠다. 스스로에 대한 자조 섞인.. 공감수 0 댓글수 0 2022. 4. 29.
  • . ㅡ 힘들었니? 공기 중을 부유하던 소리가 다가왔다. 소리는 따뜻했다. 소리가 너무 따뜻해서, 나는 차마 아무말도 하지 못한 채 웅크리고 누웠다. 눈을 수도 없이 감았다 떴지만 아침은 오지 않는다. 들숨 날숨이 교차해도 구멍난 가슴이 메워오지 않는다. 마음 한 켠에서 시작된 시림이 혈관을 타고 온 몸 구석구석을 마비시켜오는데 차라리 큰 소리내어 울 수 있다면. 나는 수백번도 더 마음 속으로 되뇌인다. 이러면 누가 좀 알아주지 않을까, 하다못해 내 뇌라도 내 마음 알아주지 않을까. 가쁘게 뛰는 심장이 가여워, 바르르 떨리는 내 팔다리가 안타까워, 나는 또 다시 눈물을 재촉해보지만 나는 내가 아닌 걸까. 이 작은 몸뚱이 하나, 눈물샘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나는 머저리 등신. 공감수 0 댓글수 0 2021. 10. 5.
  • 살려주세요 내 자신이 너무 불쌍해졌다. 가여워서, 내 몸이 대신 아파줄 정도로, 내 자신이 비참하고 치욕스럽다. 그 누가 내 마음이 이정도일 줄 알까. 오로지 나만이 아는 내 지옥. 이젠 정말 안되겠어. 이대로라면 목을 매는 것도 시간문제야. 공감수 0 댓글수 0 2020. 11. 10.
  • 위험 다른 사람에게 휘둘린다는 건 위험한 신호야. 나는 내 자신을 잃어버리면 안돼. 늘, 한 걸음 뒤에서, 얼음 위에서, 냉정함을 유지하자. 비록 내 입꼬리는 위로 말려올라가 있고 내 눈꼬리는 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 밑으로 처져있더라도. 공감수 0 댓글수 0 2020. 6. 18.
  • 순간의 기록 분명 지난 주에는 손톱달이었는데, 어느새 달이 둥글게 차올랐다. 달이 차오르는 만큼 그리움도 쌓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달을 바라보는 마음이 구슬프지 않았다. 만월이 된만큼 마음에 외로움이나 그리움같은 것들이 차지할 공간이 적어져서이련지,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문득 그런 내 자신이 불쌍해졌다. 너무 차갑게 굳어버린 내 자신이, 더 이상 달에 눈물짓지 않는 내 자신이 낯설고 비참하다. 나는 언제까지나 바람 한 점, 별빛 한 조각에도 한없이 설레고 한없이 울적할 줄 알았는데. 언제 이렇게 딱딱한 어른이 되어버렸을까. 공감수 0 댓글수 0 2020. 6. 4.
  • 다나베 세이코 <아주 사적인 시간> "재미있나?" 고가 다시 물었다. "시끄러워! 도대체 몇 번을 묻는 거야?" 내가 짐짓 화를 내자 고는 뛸 듯이 기뻐했다. "이봐, 그렇게 화내줘. 부탁이다, 엉?" 고의 무릎에 덥석 올라앉자, 고는 더더욱 기뻐했다. "노리코가 네, 응이라고 하면 미치겠다. 반항해, 제발. 난 이제 순종적인 노리코가 무섭다." "반항하면 때리잖아." "나는 때리면서 즐긴다 아이가." "아주 먼 옛날, 고짱한테 얼굴이 엉망진창이 되도록 맞은 적이 있었지." "그 대신, 지금 나를 두들겨 패." 중략 "전과 똑같이 대할 수가 없어." 말하는 동안ㅡ술기운 때문임이 분명하다ㅡ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고짱, 좋아했었어. 고짱하고 사는 것도 너무 즐거웠고, 모든 게 좋아서 어쩔 줄 몰랐을 정도였어. 즐거웠어, 지난 3년간." 고는.. 공감수 0 댓글수 0 2020. 5. 31.
  • 배수아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 난. 거리공연가가 편지에서 김씨의 부인을 불렀다. 몇번이나 불렀다. 그는 김씨의 부인의 이름에서 마지막 음절을 간략하게 만드는 그 한 음절을 좋아했다. 그는 아무도 김씨의 부인을 부르지 않은 그런 방식으로 그녀를 불렀다. 그는 누구와도 구별되는 깊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검은 망또를 두른 마법사이기도 했다. 그의 목소리는 자신이 말하는 대사를 살아 있는 비둘기로 만들어 하늘로 날려보낼 수 있있다. 가방에서 꺼낸 나무오리를 울게 할 수 있었다. 그 오리가 주둥이를 이용해 검은 표지의 책에서 운명의 페이지를 펼치도록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가 그 페이지에 적힌 문장을 읽으면, 그것은 시가 되었다. 관객들의 자신도 모르게 사로잡혀 가슴 떨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청년처럼 우아하게 마.. 공감수 0 댓글수 0 2020. 5. 31.
  • 배수아 <양의 첫눈> 키가 크다는 점 외에도 그들은 양이 실제로는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아마도 문학적인 독특함이라고 불릴 수 있는 요소를 그들의 육체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나란히 누운 두 육체가 마치 미지의 언어로 이루어진 것처럼 양에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걸어온다고 느껴진 때문이다. 사투리로 부르는 방심한 노래, 말없는 질문, 웃는 당나귀처럼. 그러나 동시에 눈을 감고 누운 그들의 표정과 자세에는, 표면적으로는 특별한 경계의 몸짓을 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테두리를 강하게 의식하고 배설물로 그것을 지키려는 원시적인 동물다운 신호 또한 드러나 있어서, 아마도 예를 들자면 그들이 파티장에 손을 잡고 나타난다면 문지방을 넘는 순간 아무도 그들 주변으로는 다가오지 않을 정도로 그들의 육체는 확실하.. 공감수 0 댓글수 0 2020. 5. 31.
  • 셰익스피어 <뜻대로 하세요> 제이퀴스 당신의 가장 큰 실수는 연애를 하고 있는 점이오. (중략) 올렌도 그럼, 그분이 여자의 죄악이라고 비난한 결점들 중에 중요한 것을 좀 기억하고 있나요? 로잘린드 중요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어요. 죄다 반 푼짜리 동전처럼 똑같고 각각의 결점은 망측하게 보이나, 다음 결점이 또한 못지않게 망측하거든요. 올렌도 그중 몇 개를 좀 이야기해 줄 수 있나요? 로잘린드 싫어요, 괜히 환자 아닌 사람한테까지 내 치료법을 대주긴 싫어요... 글쎄 어떤 남자가 이 숲을 돌아다니면서 나무 껍질에다 '로잘린드'라는 이름을 새겨 가지고 어린 나무들을 망치고, 또는 산사나무에다 시를 걸어 놓고 가시 덤불에다 비가를 걸어 놓고 하는데, 정말 죄다 로잘린드의 이름을 찬미하는 노래들이에요. 그 연애쟁이를 만나면 좋은 처방을 좀.. 공감수 0 댓글수 0 2020. 5. 31.
  • 라이너.M.릴케 <말테의 수기> 나는 아무도 아는 사람 없이,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트렁크 하나와 책 상자 하나를 가진 채, 사실 어떤 것에도 호기심 없이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다. 집도 없고 상속받은 물건도 없고 개도 없이 살아가는 생활은 도대체 어떤 생활일까. 최소한의 추억이라도 있다면 좋으련만, 그러나 누가 그것을 갖고 있나? 만일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다 해도 그건 땅 속에 묻혀버린 것과 같다. 어쩌면 사람은 그 모든 추억에 다다르기 위해서 나이를 먹지 않으면 안 될지도 모른다. 나는 늙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아, 그러나 사람이 젊어서 시를 쓰게 되면, 훌륭한 시를 쓸 수 없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때가 오기까지 기다려야 하고 한평생,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의미와 감미를 모아야 한다. 그러면 아주 마지막에 열 줄의 성공한 시.. 공감수 0 댓글수 0 2020. 5. 31.
  • 도스토예프스키 <멸시당하고 모욕당한 사람들> 더보기 "됐어요, 바냐, 그만 하세요." 그녀가 내 손을 꽉 잡고 눈물 사이로 미소를 지으며 내 말을 중단시켰다. "착한, 착한 바냐! 당신은 선하고 정직한 사람이에요! 자신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내가 먼저 우리 관계를 끊었는데, 당신은 모든 것을 용서하고 오직 나의 행복만 생각해 주는군요. 우리의 편지를 전해 주려 하고......" 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나는 알아요, 바냐, 당신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지금도 얼마나 사랑하는지, 당신은 내내 나에게 한마디 비난도 하지 않고, 한마디 쓰라인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난, 난...... 맙소사, 내가 당신에게 얼마나 큰 잘못을 한 건가요! 우리가 함께한 시간을 기억하세요, 바냐, 기억하세요? 아, 내가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를 알.. 공감수 0 댓글수 0 2020. 5. 31.
  • 아리시마 다케오 <어떤 여자> ‘토하면 괜찮아질 거야.’ 이렇게 생각하며 난간 밖으로 몸을 내미는 순간, 온몸의 힘이 배에서 가슴으로 몰렸고, 등은 저절로 격렬하게 물결쳤다. 그후로는 이미 꿈결과도 같았다. 잠시 후 요코는 힘이 쭉 빠져서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으며 맥없이 주위를 둘러봤다. 갑판 위에도 파도 위처럼 황량할 정도로 인적이 없었다. 환한 불빛이 새어나오던 채광창도 하나도 빠짐없이 커튼으로 가려져 어두워져 있었다. 오른쪽에도 왼쪽에도 사람이라곤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느라 느슨해진 마음의 틈새를 파고들었는지, 가슴의 고통이 느닷없이 또 밀려왔다. 요코는 또다시 난간 밖으로 몸을 내밀고 뜨거운 눈물을 뚝뚝 흘렸다. 마치 높이 매달려 있던 커다란 돌이 뚝 떨어진 것처럼, 과거라는 것이 커다란 하나의 어두운 슬픔이 되어 가슴을 쳤.. 공감수 0 댓글수 0 2020. 5. 31.
  • 배수아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유경, 네가 원하면 결혼하겠다." 처음으로 결혼이란 단어를 꺼내면서 교진이 나에게 한 말이다. "너에게 달렸어. 나는 네가 원한다면, 좋다." 그때 이미 나는 교진을 처음 만나던 그런 소녀는 아니었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갈등과 냉전의 시간들을 견뎌왔기 때문에 서로를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나는 교진말고도 세상에는 남자가 많음을 알게 되었고 이미 다른 남자친구와의 잠자리도 경험한 다음이었다. 나는 교진이 나에게 주었던 것들, 언제나 단 한 번만 그럴 수 있는 봄날 같은 것, 그런 것들을 무시하려 애썼다. 내가 고뇌하고 있던 것은 잠자리를 같이 했다는 이유로 꺼내질 수 있는 '결혼'이라는 문제였다. 교진이 이 세상 정의의 편에 서려면 무시할 수 없는 문제였다. 교진이 신의를 지키려면.. 공감수 0 댓글수 0 2020. 5. 31.
  • 배수아 <붉은 손 클럽> 나는 무열 너가 나에게 그런 말할 권리는 없다, 내가 설사 가스사고로 내일 아침 죽는다고 해도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대꾸했다. 그건 정말이었기 때문에 무열은 할 말이 없었다. 말문이 막히자 무열은 화가 났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덧붙였다. 오입하러 들어온 여자의 집에서 싱싱한 샐러드를 바라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나는 그날 무열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무열은 마시고 있던 생수병을 집어던지고 다시는 오지 않겠다면서 집을 나섰다. 나는 마음이 조금 아팠던가? 나는 길을 걷다가 다른 사람의 몸에 부딪혀 불쾌해하는 상대편의 표정을 만나게 되면 며칠동안 마음이 무겁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두운 기억을 주고 싶지 않다. 상처는 더욱 그렇다. 나 때문에 낯선 사람이 잠시 동안 불행했던 것에 대해서 나.. 공감수 0 댓글수 0 2020. 5. 31.
  • 홀로 홀로 어둠에 앉아 되뇐다. 괜찮아, 괜찮아. 그리고 정말 거짓말같이 괜찮아졌다. 공감수 0 댓글수 0 2020. 5. 31.
  • 생일(2011.04.05.)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공감수 0 댓글수 0 2020. 5. 31.
  • 양지훈, 박재이(2011.03.10.)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공감수 0 댓글수 0 2020. 5. 31.
  • 오다(2011.02.16.)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공감수 0 댓글수 0 2020. 5. 31.
  • 한서(2011.02.11.)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공감수 0 댓글수 0 2020. 5. 31.
  • 윤아미(2011.02.09.) 모 대학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윤아미 간호사는 그 수많은 간호사 중 몇 년째 가장 친절한 간호사로 손꼽힐 정도로 다정스럽고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이다. 적어도, 적어도 '윤아미 간호사'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만약 '윤아미'를 아는 사람이 병원 내에서의 그녀에 대한 평판을 듣는다면, 그야말로 쩍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을 거다. 정시우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간단한 수술을 위해 아미가 근무하는 병원을 찾았던 시우는 병원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말들에 넋을 놓아버렸는지, 마치 뇌수술에 실패한 사람인양 눈이 풀린 채 퇴원수속을 밟았다. 그 날 이후, 우리는 그 누구도 아미가 근무하는 병원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진실을 이야기하자면, 실상 윤아미라는 여자는 히스테리컬하기가 짝이 없는, 연극성 성격 장애자다. .. 공감수 0 댓글수 0 2020. 5. 31.
  • 모이다(2011.02.07.) 험상궂은 하늘 사이로 기어이 빗방울이 뚝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던 서의 얼굴 또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그랬지만, 서의 표정은 마치 유아기의 아이처럼 정직하다. 서를 바라보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시우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동시에 입을 열었다. ㅡ 윤아미! 멋적게도 동일한 말이 새어나오자, 서는 창을 향했던 시선을 탁자 맞은 편의 우리에게 돌렸다. 혹시나 하면 역시나. 모두의 걱정은 동일한 것이었다. 비를 작히나 싫어하는 아미였다. 비가 오면 외출하다가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야마는 그 성미를 잘 알고 있었기에, 오늘도 보지 못하는 걸까, 하는 막막함이 탁자에 스며들었다. ㅡ 남의 이름은 왜 부르고 난리야. 익숙한 카랑진 목소리에 놀라.. 공감수 0 댓글수 0 2020. 5. 31.
  • 나쁜 년(2013.07.19.) 모두 나에게 나쁜 년이라 말했어. 어째서? 나는 어깨를 으쓱할 수 밖에 없었어. 이유를 알 수가 없었거든. 그건 내가 딱히 지능이 부족하다든가 소위 형광등이라서가 아니었어. 이유를 알 수 없는 괴롭힘은 아주 오랜 시간 지속되었어. 첫 시작은 11살때였지. 잠깐 교실을 비운 사이 노트와 일기가 없어지는 나날들이 이어졌지. 할 말을 잃게 만든 사건은 11살 겨울에 벌어졌지. 숨이라도 쉬어보겠다고 아등바등대며 과학실에 다녀와 교실 문을 연 순간, 나는 물이 가득 든 양동이 속에서 내 겨울 코트를 발견했어. 교실은 싸늘했고 여자아이들은 수군대며 나를 힐끗 힐끗 훔쳐보고 비웃었지. 나는 울지 않았어. 울고 싶지도 않았고. 어떤 기분이었는 지는 기억이 나질 않아. 그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어. 고등학교 때도 별반 다.. 공감수 0 댓글수 0 2020. 5. 31.
  • 어둠(2013.06.30) 설명할 수 없는 어둠이 내 팔에도 내려앉았다. 가늘고 긴 팔은 어둠을 탐미하며 힘껏 빨아들였다. 온 몸에 어둠이 가득차는 느낌에 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가 있었다. 어둠을 듣고, 보고, 느낀다. 비단 귀, 눈, 또는 피부만으로가 아닌 또 다른 감각으로. 피부로 어둠을 보고 눈으로 어둠을 듣는다. 공감수 0 댓글수 0 2020. 5. 31.
  • 아스피린(2013.06.10.) - 너는 왜 눈물짓지 않니? 그 아이가 물었다. 나는 한없이 건조하기 때문이라 말했다. 그 아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어느 하나, 일말의 거짓도 없었다. 실제로 나는 메말라 있어 눈물을 흘리기엔 부적합했고 그 아이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평생 이해하거나 이해받을 수 없는 어떤 것들. 나는 아스피린을 물 없이 입 안에 털어넣었다. 오도독 오도독, 부서진 아스피린 조각이 입술을 타고 넘어와 바닥에 떨어진다. 공감수 0 댓글수 0 2020. 5. 31.
  • 아메리카노와 브라우니(2013.06.10.) 말쑥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멀쩡하게. 순간 망치로 두들겨 맞은 듯 멍해져버린 나는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을 씹어삼켰다. 그 단어들은 뜨겁고 씁쓸하고 포악한 맛이 났다. 익숙한 맛이다. 나는 한숨과 함께 커피를 들이켰다. 내 속의 어린 아이는, 단 한 번도, 달디 단 이기심을 맛본 적이 없다. 차갑고 바닐라향이 가득 감도는 아이스크림이 올려진 촉촉하고 부드러운 브라우니 같은 이기심. 나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브라우니를 빤하니 바라보았다. 어릴 적 나는 한없이 이기적이어야할 시기에 이기심을 발휘하기엔 너무 아팠고 나 스스로를 운신할 수 있을 만큼 건강이 호전되었을 땐 너무 철이 들어버렸다. 거울 속의 나는 어른처럼 차려입은 꼬마 아이에 불과했지만 모두들 나를 어른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들은 나에게.. 공감수 0 댓글수 0 2020. 5. 31.
  • 쏟아지다(2012.01.05.) ㅡ 결국, 너도 기억하고 있었던 거 잖아. 얼굴을 감싸고 주저앉아 있는 새,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철판을 긁어대는 듯한 쇳소리. 그 소리가 만들어내는 공기의 파동에 나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ㅡ 기억 같은 거, 하지 않아. 힘들게 입술을 달싹였다. 쇳소리는 희미하게 웃으며 오른 귓가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왼 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ㅡ 거짓말. 거짓말.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일까. 나는 정말 다 잊었던 것일까? 지워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었을까. 문득 폭우에 수문 열리 듯 닫아둔 기억들이 터져나왔다. 기억들은 하나같이 날이 서 있어 내 몸에 생채기를 냈다. 어둡고 끈적이며 날카로운 기억들. 나는 비명을 질렀다. 좋았던 것들, 그 것들은 다 어디에 있지? 나는 차마 눈을 뜨지 .. 공감수 0 댓글수 0 2020. 5. 31.
  • (2011.05.16.) ㅡ 뭐라고요? 시끄럽다. 야외공연장에 울리는 앰프소리는 귀를 멍하게 만들었고, 길게 이어지는 베이스 사운드가 잦아들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울리는 비명소리로 반고리관이 아파왔다.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내 앞에는 필사적인 표정의 한 사람이 서 있었다. ㅡ 대체 뭐라고 하시는 거에요? 짜증이 솟구쳐 나는 최대한 정중하지만 가시돋힌 목소리로 되물었다. 의사전달능력이 없는 사람은 질색이다. ㅡ ... 한다고, 널 좋아한다고! 아............., 난 또, 뭐라고. 커다란 음향에 묻혀 여전히 잘 들리지는 않지만, 핏대를 잔뜩 세운 채 고래 고래 소리를 질러대니 전달이 되긴 되는군. ㅡ 그런데요? 심드렁하게 받아치고는 다시 무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상대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와 무대를 번갈아 보더니,.. 공감수 0 댓글수 0 2020. 5. 31.
  • 글을 씀(2011.02.26.) 겉멋만 들어서, 혹은, 할 일없이 시간이 남아돌아서, 그래서 글 쓰는 게 아닙니다. 가뜩이나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겨우 겨우 피를 토해내는 내 심장을 쥐어짜서 쓰는 겁니다. 그렇게라도 안하면 속에 담긴 감정때문에 심장이 터져버릴까봐, 이 생에서의 실존을 포기하고 미쳐버릴까봐, 겁이 나서, 겁이 나서 견딜 수가 없어져 겨우 겨우 뱉어내는 겁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더보기 2020.05.12. 첨언 켜켜이 쌓인 나의 고통들은 하나 하나 글의 조각들이 되고, 나는 글을 쓰기 위해 그것들을 골라냈다. 나는 고통스러워 글을 쓰는 걸까, 아니면 고통스러우려 글을 쓰는 걸까? 아주 오랜 시간 내가 외면했던 진실이 내 앞에 마주 앉았다. 그는 내 생각보다 더 우직했으며, 내 .. 공감수 0 댓글수 0 2020. 5. 31.
  • 뛰다(2011.02.05.) ㅡ 사실, 심장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정확히 왼쪽 흉부에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P교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의실은 찬물을 끼얹듯 조용해졌다.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실이 거부되는 순간, 학생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이론이며 지식이란 그런 것이다. 유령과도 같이 존재하는 그네들은, 실존하고 있는 감각과 경험을 뛰어넘는 불가사의한 힘을 지녔다. ㅡ 그렇다면, 교수님, 심장이 오른쪽에라도 있단 말씀이십니까? 누군가, 침묵을 비집고 큰소리로 물었다. 그 질문과 함께, 강의실은 소란스러워졌다. ㅡ 물론, P교수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지었다. ㅡ 드물게 오른 흉부에 심장을 지닌 사람도 있지요. 제가 말씀드리고자 했던 바는, 심장은 흉부 중심에서 살짝, 아주 살짝 왼쪽으로 치우쳤을 뿐, 정확.. 공감수 0 댓글수 0 2020. 5. 31.
  • 읽다(2011.02.04.) 그 날,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아도, 뚜렷하게 기억나질 않지만, 모처럼 집이 비던 날이었다는 확실한 기억의 끈을 잡자면, 분명 나는 자유를 만끽하며 컴퓨터에 몰두해 있었을 것이다. 그래, 아마도 컴퓨터 앞에 자리하고 앉아 우리 반 카페에 접속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핸드폰 벨소리가 구슬프게 방 안을 가득 채울 때 즈음하여, 나는 발신자를 확인했다. 그였다. ㅡ 여보세요, 살짝 상기된 내 얼굴만큼이나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그는 늘상 그랬듯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지금 반 남자아이들끼리 J의 집에 있다고 말했다. 아홉명, 덩치만큼은 어른처럼 자라난 남학생들이 그 늦은 시간에 모여 수다나 떨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웃음이 .. 공감수 0 댓글수 0 2020.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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